‘자세’가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숨 쉬는 템플스테이] 고양 흥국사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지만 과연 그럴까. 분명한 것은 우리의 고통은 대부분 과거나 미래를 산다. 이미 지나간 것에 서러워하고,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두려워하며 괴로워한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끝이다, 글로 담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행동도 영상으로 찍히지 않으면 자취조차 없다. 생각 속에만 살아있고 붙들고 있으니까 존재하는 것이다. 실존(實存)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해주는 것은 얄궂게도 통증뿐이다. 지독하게 아프면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나’라는 것을 뼈저릴 정도로 느낄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호흡이 삶의 근본이다. 호흡이 과거에 있다면 이미 죽은 것이요 미래에 있다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이다.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그렇다. 통증도 의식이어서 호흡이 멎으면 동시에 멎는다. 가장 뚜렷하고 정확한 현실인 호흡은 의식의 바깥에 있다. 다들 무의식중에 들이쉬고 내쉰다. 삶의 부침과는 무관하게 동일한 간격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인생이 풀리든 안 풀리든 상관없다. 호흡을 하고 있는 한, 살아있는 것이다. 결국 산다는 건 숨 쉬는 것이다. 관념도 아니고 명분도 아니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호흡을 잡으면 고통을 잡을 수 있다.
임금도 보았을 ‘새하얀 풍경’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흥국사(주지 정문스님)도 대단한 고찰이다. 거의 1400년 전에 지어졌다. 북한산 건너편의 노고산에 있는데 절에서는 한미산이라고 부른다. 노고(老姑)의 뜻에서 유추하면 한미산은 ‘할미산’이다. 서기 661년 원효대사가 북한산 원효암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북서쪽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자 그걸 자세히 보려고 산을 내려왔다. 돌로 만든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발견하고는 인연이라 여겼다. 본전(本殿)에 이를 모시고 절 이름을 흥성암(興聖庵)이라 했다.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니 앞으로 많은 성인들이 배출될 것'이라는 축원도 남겼다. 흥국사 미타전 아미타불 불상 내부에 복장(服藏)된 문서에 나타난 창건설화다.
이후에는 특별한 사건 없이 조용히 흘러갔는데 1686년(숙종 12년)에 중창됐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선 영조 대에 이르러 한결 크게 주목받았다. 1758년(영조 34년)에 한 번 더 중수(重修)했다. 건물들을 손보면서 미타전 아미타불에 복장물을 넣은 것도 이때다. 1770년(영조 46년)이 ‘성은(聖恩)’의 절정에 도달한 시간이다. 영조가 어머니 숙빈 최씨의 묘지 ‘소녕원’에 행차하다가 폭설을 만났다. 길이 막혀 흥성암에서 하루 묵은 영조는 다음 날 아침 설경을 보며 시 한 수를 지었다. ‘朝來有心喜(조래유심희:아침이 돌아오니 마음이 기쁘구나)/尺雪驗豊徵(척설험풍징:눈이 한 자나 쌓였느니 풍년이 들 징조로다).’ 자신의 작품을 아예 목판에 새겨서 새로 단장한 약사전에 내걸었다. 약사전은 흥국사의 중심 전각이고 원효가 세운 최초의 흥국사다.
영조가 친히 지나가고 나서부터 왕실의 원찰(願刹)이 되었다. 흥성암에서 흥국사(興國寺)로 개명한 것도 임금의 결정이다. 숙빈 최 씨는 원래 왕에게 세숫물 대는 궁녀였다. 영조의 출신성분은 불리했고 왕위에 오르기까지(경종의 급사)와 왕위에 올라서도 내내 불안했다(이인좌의 난). 흥국사에 대한 편애와 왕권에 대한 애착 사이의 함수관계를 넘겨짚지 않을 수 없다. 11월29일에도 영조가 갔을 때처럼 흥국사에 큰 눈이 내렸다. 전국이 정전과 단수로 난리를 치렀다. 나뭇가지에 수북이 쌓인 눈을 어이없지만 벚꽃으로 잠시 착각했다. 처마에 길게 늘어진 고드름이 추위가 풀리자 반나절 만에 종적을 감췄다. 원효가 예언한 흥성암의 ‘성(聖)’은 성인이 아니라 군주였던 것이다. 삶이란 우연성에 갇혀있고 적중하기 어려운데, 끝이 훤히 보이지만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해결되지 않는다.
잘 ‘쉬어야’ 잘 쉴 수 있다
흥국사 템플스테이에서는 선(禪)명상을 주로 한다. “호흡의 완성이 명상의 완성이고 자세를 바로 해야 호흡이 바로 된다”는 것이 지도법사 여가스님의 지론이다. 이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수영을 하든 자전거를 타든 기본자세라는 게 있다. 기본자세대로 해야만 다치지 않을 수 있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몸은 최대한 이완하고 마음은 최대한 각성하는 것이 명상의 근간이다. 그래서 좌선(坐禪)이 보편적으로 권장된다. 누워서 하면 잠들고 걸으면서 하면 지치니까.
자세가 달라지면 삶도 달라진다. 스님은 앉아있는 채로 ‘엉덩이-손-턱-혀’로 이어지는 신체의 중심축을 교정해줬다. 두 다리와 발이 좌우 균형을 이루는 교족좌(交足坐)를 취해 ‘골반 중립’을 이루고, 양손은 양 무릎 높이에서 선정인(禪定印) 형태로 모으고, 시선이 산만하지 않게 턱은 당기고, 혀는 입천장에 붙이는 체계다. 요추와 흉추가 곧추서면 호흡이 단전 아래까지 풍성하게 채워진다. 참가자들은 신선한 경험을 했다며 즐거워했다. 숨의 힘이 삶의 힘이어서 집중력이 놀랍게 향상된다.
어깨만 펴도 자신감이 생긴다. 호흡의 에너지가 증가하는 덕분이다. 자세가 구부정하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몸 안의 산소량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숨이 짧아지면 폐를 감싼 갈비뼈와 횡격막이 위축되어 신체기능이 전반적으로 저하된다. 알고 보면 피로의 원인은 간이 아니라 폐활량이다. 숨부터 쉬어야 피가 돌고 소화가 되는 법이다. 산소가 인류를 좌우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호흡이 인생의 처음이자 끝이다. 고통은 그다음 문제이거나 어쩌면 괜한 고민. 숨만 쉬고 살면 늘 '쉴' 수 있다.
선명상스테이(1박2일)
: 오후 12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선명상 이론과 실습, 연등 및 단주 만들기, 타종체험과 저녁예불, 스님과의 차담 등.
찾아가는 길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흥국사길 82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하차 → 2번 출구로 나와 뒤돌아서 20~30m 버스정류장에서 704번, 34번(일반) 환승 버스 승차 → 흥국사 앞 하차 → 도보로 10분 거리.
문의: (02)381-7980
예약: www.templestay.com
출처 : 불교신문